영화를 본지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많은 것을 기억하게 해준 영화 였기에 한자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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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란 고장은 충주하고도 변두리다. 지금이야 공단이 들어서 시골 풍경이라고는 좀처럼 찾기 힘들지만, 불과 15년 전만 해도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으려 해도 멀리 마실을 가야할정도로 산골 오지 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같이 지으신 집은 전형적인 새마을운동의 산물로 지어진 집에, 작은 방 두개, 마루 그리고 부엌으로 이루어진 안채와 방하나와 광으로 이루어진 사랑채 그리고 외양간겸 창고가 있는 건물로 나눠져 있었다.
외양간에는 항상 암소가 한마리씩 자리를 차지 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처럼 소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진 않았지만, 영화에서 보아온 할아버지와 소의 모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인터넷을 통해 구한사진이다 하지만, 많이 비슷하다
습은 그저 영화속의 장면들이 아니라 나의 추억속에 남아 있는 장면 모두 그대로 이다.
밥 때가 되면 항상 여물통의 뒤지느라 분주하게 욺직여 목에 걸려 있던 워낭 소리(아버지 말로는 우리 지역에서는 풍경이라고 했다고 한다)가 들려 왔었다.
아주 어릴적을 제외 하고는 우리집 소는 주로 출산을 목적으로 한 암소만을 키웠다. 늘 한마리가 자리를 지키다 어느덧 배가 불러오고, 백열 전구등을 하얗게 밝히던 어느날 밤이면, 어김없이 송아지가 태어나곤 했다.
태어나자 마자 얼마 안되어 세상을 신기한듯 마냥 큰눈으로 바라보던 그 눈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신기한 마력이 있다.
하지만 귀여운 모습도 잠시 호기심이 날뛰기기 일수다. 동네를 휘졌고 다니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야 하는게 바로 송아지다.
그도 잠시, 백여일이 지나고 나면,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한마리에 수백만원하는 송아지는 집안의 재산이다. 고로 상품가치가 높을 때 내다 팔아야 함은 당연하다. 소장수가 왔다 갔다 하고, 때가 되면, 이미 어미가 눈치를 챈다.
그러고 어느날 새벽, 그렇게 어미소는 하염없이 송아지를 부르며 울기 시작한다.
소의 울믐과 눈물을 보고 들으면, 그 어떤 인간의 슬픔 못지 않게 애절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어미소는 한동안 밥도 입에 대지 않고 하염없이 울기만 한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고.. 그래도 해는 뜨고 달이 지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 온다.
워낭 소리는 그런 일상의 추억을 다시금 깨워준 영화이다.
일부에서는 상업적 이용이네, 동물 학대네 말이 많다.
하지만 나는 작게 나마, 할아버지와 소의 눈빛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조용히 소의 풍경 소리가 들려온다...



